주간 보고를 지웠습니다
앞서 Hack the process 뒷 부분에서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팀 안에서 주간 보고 자체를 없애고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 적이 있습니다, 정도가 아니라 대체로 주간 보고 없이 운영했습니다. 규모가 10명 정도를 넘어섰을 때 서면 보고를 요구하기 시작했으니 대략 2.5년은 넘을 듯 하네요.
리드 레벨을 받은지가 좀 되어서 온갖 회의체에서 갖가지 회의, 그 중에서도 특히 주간 보고를 들어갈 때마다 이게 꼭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에나 비슷하지 싶습니다. 상석의 피보고자와 자기 차례에 발표하면 나머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 하위 멤버들. 논의라 할만한 무언가 보다는 차라리 스몰톡들. 이럴 거라면 그냥 서면으로 받는 편이 낫지 않나? 이 사람들 시간당 합산 인건비가 얼마인데. 보스가 글을 못 읽어서 굳이 대면하고 읽어주는 건가?
오해가 있을까 첨언하자면, 레거시는 그 불합리성이 명백하게 밝혀지기 전 까지는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수 년에 걸쳐서 참 다양한 회의체에 들어가 보아도, 주간 보고가 왜 필요한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직 내에서 아예 주간 보고 자체를 없애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적어도 2년 넘게. 그 결과로 말하건데 — 정규 업무 보고는 대체로 부적절한 관습입니다. 기술 조직 같은 기능 단위 조직의 경우에는 특히.
물론, 아무 조직이나 이런 실험이 통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작은 기능 단위 조직에서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정규 보고 제거의 실험을 가능하게 하려면 대략 이런 조건들이 필요하겠습니다:
- 무엇보다도 효용이 부담보다 커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단편적으로 정규 보고 자체를 없앴을 때 얻을 수 있는 효용은 전체 실무진의 업무 시간 확보 (주당 약 2시간 * 인원), 부담은 내부 커뮤니케이션 저하, 그리고 리드의 부담이 좀 더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 이때 리드는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상당히 깊이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정규 진행 확인이 없는 대신, 필요할 때 수시로 진척 상황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업무 조직 업무 전반을 꿰고 있어야 하겠지요.
리드의 입장에서 현황 파악이 힘들다고 느끼는 시점이 그 한계가 됩니다. 기능의 가짓수, 진행 업무의 수, 조직원 수와 복잡성 등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 조직 내/외 업무 커뮤니케이션이 한 두 가지 채널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가장 추천하는 방식은 메일 cc 입니다. 개발 업무는 vcs commit log 및 issue tracker로 점검합니다. 개인적이고 백로그 정리하기 힘든 채널, 특히 메신저는 안 됩니다. 메신저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메일/이슈보드로 추가 정리하도록 요구하세요.
- 리드를 제외한 조직원간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약화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재택율이 50%를 넘기는 경우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방식에서 리드와 구성원은 수시로 대면하는 반면, 구성원 사이에서는 데면데면해지기 쉽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응 방법이 필요합니다. 파트너/소조직을 아예 지정하거나, 배정 업무를 섞어 넣거나, 웬만하면 점심은 같이 먹는다는 내부 컨벤션(?)을 둘 수도 있구요.
이런 실험이 가능했던 이유는 — 첫째로, 애초 조직의 모든 업무 프로세스를 내가 처음 만들어 넘겼던 거라서(…) 글자 그대로 조직의 모든 기능과 접점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조직의 주요 기능이 딱 두 가지(개발/분석)이며, 조직 구성원도 10명 안쪽으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 배정과 우선순위 관리는 원래부터 다 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보고 때문 뿐만 아니라 (코드 리뷰, 질의 응답 등) 각자 자리에서 진행 상황 점검하는 일이 애초에 일상적으로 있었습니다. 즉, 리드가 실무를 잡고 있는 기능 조직에서는 적용하기가 매우 수월합니다.
이 경우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용은 뭐니뭐니해도 실무진 업무시간 슬롯을 확보하기 좋다는 겁니다. 30분의 회의를 한다 치면, 회의 준비 및 이동과 컨텍스트 스위칭까지 대략 2시간의 실무 시간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하루 회의 3–4건이 잡히면 뭐 했는지도 모르게 일과시간이 사라지는 겁니다.
그 다음 효용은 점검이 불시/수시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작정하고 보고하려는 필요가 아니라 질문이나 중간 점검을 통해서 진행 상황은 얼마든지 확인 가능합니다. 때문에, 개인 성향상 진행 상황을 딱히 푸시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정규 보고를 하는 것보다 대놓고 놀기는 더 힘들어집니다.
이것들이 연결되면 마지막, 리드가 조직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구성원들에게 심어줄 수 있고, 이러한 인식이 신뢰감을 구성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어느 시점에서 운영/관리가 어려워질 때 해당 기능을 위임함으로써 조직 기능을 자연스럽게 확장하기 수월하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어디까지나 잘 운영 된다면 말입니다.
단점은 명확합니다. 리드가 업무 전반을 머릿속에 넣고 한 발씩 더 움직여야 합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업무의 진행 상황을 거의 매일 체크해야 하고, 각자에게 배정된 업무와 예상 시간, 그 우선 순위와 점검 내용을 상당 부분 머릿속에 갖고 있어야 합니다. 대략 최소 1–2일 간격으로 한 번씩, 1–2 시간 정도 일상적으로 소요됩니다.
둘째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다변화하거나 (컨벤션이 지켜지지 않거나), 인원이 늘어났을 때 장악이 어렵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이건 구성원들에게 납득시켜야 할 부분일 것 같습니다. 정해진 채널로 업무 자료를 주고 받는다면 따로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그 밖의 채널이라면 반드시 별도 보고를 해야 한다고요. 꼭 메신저로 대충 끄적거리고 끝내는 친구들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하…)
사실상 리드 입장에서의 리소스 소모량과 실무진 확보 시간 효용을 비교하면 대부분 기간에서 효용성이 크진 않았습니다만, 개인/조직 성향과 신뢰감 효과 때문에 가능한 꾸준히 진행했고 그 결과는 지금 판단하기에도 썩, 좋았습니다. 굳이 주간 보고 회의를 하지 않더라도 진척 확인은 전혀 문제가 없었고, 상위 조직 주간 보고 회의 자료는 (하…) 중간 기록만 정리하면 되었습니다. 도리어 주간 보고 회의를 일상적으로 하는 조직은, 쉽게 맥락 없고 흐름 없는 단순 사건 나열이 됩니다. 많이 보아 왔던 그런 것들 말입니다.
회사 업무 중에서 가장 건드리기 쉽고, 또 최적화 효용성이 큰 부분이 보고 체계와 회의입니다. 그 두 가지가 결합된 정규 보고 회의라면 반드시 한 번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꼭 필요한 프로세스입니까? 그저 관습적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합산 인건비 만한 가치가 있는 회의가 되고 있습니까?
한 두 회기만 건너 뛰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닐걸요?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