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리드 오답노트

좋은 사람이라는 함정

dxnlab 2026. 9. 16. 19:48

관리 업무를 맡은지 얼마 안 되었던 초짜 매니저 시절, 지금 생각하면 이를 좀 갈고 시작해야 하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전후사정 차치하고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는건 진짜 착한게 아니에요”

그 때는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별 말을 못했지만, 이 지면을 빌어 혹 전할 수 있다면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니 저기, 내가 네 친구도 아니고, 직장 상사인 내가 너한테 착해서 뭐하게. 유치원이야?

욕먹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종종 하는 말입니다. “리드는 욕을 먹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이끈다는 일에 욕 먹지 않는 선택지는 없어요. 누구에게 어떤 욕을 먹을지 결정할 권한과 책임이 주어질 뿐이지” 마음을 편하게 갖길 바랍니다. 이건 어떻게든 피하고 돌아갈 수 있는 현실 규정 같은게 아니라 만유인력 같은 자연 법칙입니다.

사람이 셋 모이면 정치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3,4인 한 식구가 모여 식사 한 끼를 같이 먹으려 해도 그 방향이 온전히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번거로우니 밖에서 사 먹자는 사람, 괜한 돈 들이지 말고 집에서 간단히 해 먹자는 사람, 그 중간 절충안으로 배달 시켜 먹자는 사람. 중국집 배달로 중론을 모았다 해도 세부 메뉴에서 갑론을박을 하다 보면 이럴 바에야 나는 라면이나 끓이겠다는 급진파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비즈니스에서 하나의 단위 조직은 일반적인 가족 구성보다 그 인원도 많고 관계도 더 복잡합니다. 한 끼 식사 메뉴 결정에서도 온갖 이해관계가 등장하는데 비즈니스 단위 조직의 정책 결정이 완만하게 풀릴 리가 없습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릅니다. 완만하게 양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성 과격파도 존재합니다. 결정은 뭐가 됐건 상관 없고 그냥 적당히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몰라 부류도 분명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결정이던.

상호 모순인 여러 요구 사항을 온전히 반영하여 하나로 합치는 일은 셋 이상의 평행선을 한 점에 모으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책임회피

사람은 대개 선택을 두려워 합니다. 정확하게는 선택에 의해 발생하는 책임을 두려워합니다. 애초에 팔로워십이 발생하는 근본부터 책임을 피하기 위한 개개인의 욕망에 상당 부분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팔로워는 리드에게 자신 몫의 결정 권한을 위임하며, 그에 따라 리드는 선택에 대한 권한과 그 책임을 동시에 쥐게 됩니다. “차려주면 고마운 줄 알고 먹어” 라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리드 또한 사람이라서 선택에 따른 책임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 생각이, 선택이 틀렸다면 — 그래서 우리가 실패한다면 — 나는 그렇다 쳐도 — 나를 따라 준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고민 많은 리더들 중에서 이런 생각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면, 좀 하쇼. 원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유글레나Euglena야?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리드는 역으로 전가를 시도합니다. 네가/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말입니다. 이걸 위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방임이고 책임회피입니다. 위임과 방임은 깻잎 한 장 차이로 갈립니다. 책임 외의 나머지를 다 넘겨주면 위임이고, 그 밖에는 모두 방임입니다. 수 없이 많은 리드가 방임의 무한루프:

알아서 해라
> 왜 멋대로 하냐
>> 이런 것도 모르냐
>>> 이걸 어쩔거냐
>>>> 좀 알아서 해라

에서 헤어 나오질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리드를 하지 않는게 나은 경우라 봅니다만, 세상에는 작건 크건 리드의 자리가 대단히 많고 — 특히 연공서열을 중시하며 인정이 넘치는 국내 기업 환경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입니다.

비슷하게 민주 절차라는 미명하에 다수결을 택하는 방임도 있습니다. 회식 장소 같은 것이야 적당한 원칙 안에서(i.e. 채식주의자 데리고 고깃집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다수결로 결정해도 상관 없겠습니다만, 그보다 더 주요한 내부 정책, 혹은 사업상 의사 결정 사항 등을 다수결에 부치는 것은 책임을 분산시켜 회피하는 겁니다. (다수결에 대해서는 쌓인 할 말이 많아서…)

그걸 결정해서 책임지라고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위임이든, 다수결이든, 그 방식을 결정한 것 또한 리드입니다. 그러므로 리드는 어떻게 해도 결과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피할 구석 따위는 없습니다.

 

쓸데없이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이 무슨 소용 있나요
— 델리스파이스DeliSpice, <저도 어른이거든요> 중.

앞서 테크리드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에서 드러낸 염려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어느 쪽에 좋은 사람이, 좋은 리드가 되겠습니까? 주니어에게? 시니어-매니저에게? 혹은 협력 조직에? 조직 전체에? 상위 리드에게? 파트너사에? 경쟁사에게? 아니면 리드 그 자신에게? 각자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며 때로는 그 입장이 서로 모순적입니다. 그 입장도 시시때때로 바뀌며 종종 바라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했을 때 — 오히려 내가 내려야 하는 답은 명확해졌습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해도 좋은 사람/리드는 될 수 없으니, 그저 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리드라면 충분하단 것입니다. 결정과 책임 말입니다.

조직 내부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려면, 조직이 향하는 방향(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조직 외부에 대한 대응 정책을 결정하려면, 조직의 달성 목표와 우선순위가 설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 목표, 우선순위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따르기 쉽습니다. 명시적/암묵적으로 비전, 목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그것을 일관적인 시행 정책으로 밀어 붙인다면, 나머지는 그에 따라옵니다. 리드가 없더라도 어떤 선택이 이루어질지 분명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목표, 우선순위 만큼 일관성이 중요합니다. 오락가락하는 비전은 캐치프레이즈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정책은 가치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에 맞고 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꼭 결과가 좋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모두를, 모든 것을 안고 갈 수도 없습니다. 만약 이런 정책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직을 떠나겠지요. 다만, 일관성이 없으면, 혹은 책임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단 하나의 작은 사건 하나로 모든 리더쉽이 무너집니다.

그러니 리드는 “내가 언제 그랬어?” 와 “이거 어쩔거야?”라는 식의 말이 함부로 입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한 번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그 어떤 방법을 가져와도 백약이 무효합니다.

어떤 선택, 어떤 결정이라도 상대적인 우열은 반드시 존재하며 각양각색의 의견이 반드시 터져 나옵니다. 그 모두를 하나하나 짜 맞추려 하면 a) 조직이 산으로 가던지, b) 아무 결정도 못하던지, c) 리드 자신이 없어지던지.의 셋 중 하나로 귀결됩니다. 어느 쪽이든 조직은 골로 가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결정하고 행동하는데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부담스러울 것 없습니다. 어차피 먹을 욕입니다. 누구에게 어떤 욕을 먹을지만 결정하면 됩니다. 어차피 좋은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회사에서 굳이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직장 동료이면 충분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인간 말종에 성과 지상주의 일 중독자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일부 그런 시각이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나도 모든 이들과 친구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직의 결정에 있어서는 개인 사정을 좀 더 중시하는 편이었습니다.

물론 사무실에서는 조직 전체의 성과가 가장 중요하지만, 중장기 성장을 감안한다면 단기 성과를 위해 쥐어 짤 수 없는 노릇입니다. 여기에는 스스로 개인주의자로 생각하는 면과, 상당히 심한 번아웃의 경험이 있었습니다만 — 역시 이 이야기도, 따로 해야 하겠습니다. MZ 세대의 끝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