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리드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다른 일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이라고 충실할 리 없다”
개인적인 지론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상사Boss라는 이름으로 다방면의 여러 리드역Lead Role이 있습니다. 리드가 아닌 입장에서는 쉽게 “내가 리드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텐데, 바라고 생각하는 바 — 레거시 리더쉽Legacy Leadership이 반드시 있습니다.
리드 스타일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성향과 적성,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팔로워십Followership의 상황, 여건, 조직의 비전과 전략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그 방식은 판이하게 다를 겁니다. 그리고 아직 관리급 이상 리드역을 맡아보지 않은 주니어/시니어 레벨의 의견이라면, 개인적으로 그 중 절반은 스스로 리드역을 맡았을 때 현실로 구현할 수 없는 실무역의 바람으로 봅니다.
가령 앞의 다른 글에서 재택근무의 가장 큰 적은 관리직의 부담(and/or 중간 관리자의 무능)이라 썼습니다만, 그렇다고 한 조직의 운영 방식을 대면 근무 중심에서 재택/원격 중심으로 전환하는 일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최소 1–2년 이상 교육/육성 및 업무 프로세스 정립 등 오랜 준비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실험조차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실무에서도 언뜻 불편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레거시 시스템, 레거시 프로세스가 나중에 알고 보면 불가피한 환경 내에서 얻어낸 최적화의 결과일 때가 꽤 있습니다. 레거시 리더쉽도 마찬가지로, 대체로 그 배경 맥락을 보면 나름의 합리성이 있습니다. 물론 별 생각 없는 경우도 그만큼 있습니다만.
관객의 시선에서 보면 만사가 쉽고, 단순합니다. “내가 해도 저보다는 낫겠다” 하기는 쉽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런 단편적인 시각, 배경 맥락에 대한 무지 때문에 쉽게 말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어렵습니다. 혹여 실제 그 자리에 서게 된다면 관점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테크리드의 일도 그렇다고 봅니다.
기술력/문제 해결력:TopTech
기술 조직의 실무 인력, 특히 주니어 레벨에서 리드에게 가장 크게 바라는 역량은 기술력 — 정확하게는 실무 기술에 대한 지식,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돌파해내는 역량일 때가 많습니다.
수석Principal/탑테크TopTech, 즉 기술 실무 역량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은 너무 단편적입니다. 마치 사극이나 게임에서 한 사람의 무장이, 혹은 보스 몹Boss Mob이 다른 일반적인 개인/몹보다 훨씬 강력한 무력을 보이길 기대하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이라면 프로 스포츠에서 현역 선수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코치나 감독, 구단 사장은 실력이 더 뛰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은, 팀 스포츠에서 주장을 맡는 선수는 실력 또는 승리 기여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실력이 훨씬 뛰어난 선수(실무)가 그만한 실력/실적을 갖지 못한 감독, 코치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까?
냉정한 현실은, 사극/게임처럼 장수가 전선에서 직접 뛰어 다녀야 할 전투라면 이미 망했다는 사실입니다. 관리직Manager, 리드Lead에게는 조직 관리 운영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 비중만큼 실무에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집중력이 제한됩니다. 따라서 탑테크를 리드로 두면 득보다 손실이 훨씬 큽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를 박물관 금고에 모셔 두고 경쟁에서 이기길 바라는 꼴입니다.
반대로 리드의 기술력이 많이 낮아도 괜찮은가 하면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특히 테크리드와 같은 전문 기술 조직에서 실력/기술력이 없는 리드의 말에는 무게가 없습니다. 일반 기업 조직에서 대리급 정도만 되어도 리드의 지시와 조언이 실무에 유효한지 아닌지는 손쉽게 판단합니다.
여기서 유명한 조언이 “Keep your hands dirty”라고 봅니다. 실무를 직접 할 일이 없는 수준의 테크리드가 될지라도, 실무에 대한 최소한의 감을 잃지 않도록 꾸준히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바닥에서 기술 실무를 잘 알지 못하는 테크리드만큼 호구 잡기 좋은 존재가 없습니다. 다들 많이 겪어 봤을테니 잘 알 겁니다. 하지만 실무를 돌볼 시간/여유가 제한된 리드의 자리에서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운영/관리력:Manager
대리/과장급 정도의 숙련 실무 인력 — 시니어Senior 레벨이라 하겠습니다 — 은 점점 더 리드Lead의 지시와 조언을 참견/간섭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실무에 대한 자신감이 크면 클 수록, 실무진의 생각/판단과 다른 리드의 지시/조언은 역설적으로 가벼워집니다.
때문에 시니어 레벨에서, 그리고 상위 조직의 관점에서는 테크리드에게 실무 참여보단 조직을 잘 운영Operate하고 관리Manage하며, 교육과 육성으로 조직을 발전시켜가는 역량을 주로 기대합니다. 관리역Manager Role이라 하겠습니다.
관리역의 일은 그야말로 역설Paradox의 대잔치입니다. 위임의 침묵이 지시만큼 강력한 조언이 되고, 치밀한 전술은 마이크로 매니징이 됩니다. 세심한 배려는 권한을 벗어난 참견이 되기 쉽고, 유비무환의 대비와 미래를 내다 본 도전이 쓸데없는 낭비가 되기 십상입니다. 역사적인 사례라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운영/관리 역량은 기술력처럼 눈에 잘 보이는 측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훌륭한 관리자가 이끄는 조직은 일을 순탄하게, 수월하게 완수합니다. 때문에 문제 자체가 쉬운 듯 보이기 쉽고, 사라진 후에야 제대로 평가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력:President
조직 내에서 정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선 편광렌즈를 빼고 실질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다수의 사람, 조직에 얽혀 있는 복잡한 이해관계 사이에서 합의/동의/협력과 경쟁/조율 등 다양한 방식, 전략을 통해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는 행위, 혹은 그 능력인— 정치력Policy은 그 의미만 보더라도 리드에게 꼭 필요한 능력 아니겠습니까?
흔히 정치라 하면 알맹이 없이 공허한 포장, 권력 관계를 통해 불공정한 이득을 편취하는 행위로 보는 것 같습니다. 모든 관계는 신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세상 이치를 생각해 보면, 그런 방식을 좋은 정치 전략으로 보지 않습니다. 제한적인 기간/범위 내에서는 어느 정도 이득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긴 흐름에서는 막대한 손실을 입습니다. 주위에서 부당 이득이라 적대하는 만큼이 정치적인 손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추가로 어떤 정치 행위를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안으로는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고, 갈등을 조율/조정하며, 규율과 정책을 통해 방향성과 우선순위를 공고하게 합니다. 밖으로는 전략 지형을 파악하고, 협력과 지원을 얻어냅니다. 이 모든 전략/전술이 정치력에 해당합니다. 리드가 내정을 못하면 오합지졸로 사분오열 되고, 외정을 못하면 사상누각의 총알받이가 됩니다. 결국은 리드 그 자신도 조직도 망하는 길입니다. “병졸이 정치를 못하면 그 혼자만 죽지만, 장수가 정치를 못하면 군대가 무너집니다”
정치력의 기초는 신뢰와 신용입니다. 그 대상이 조직 내의 조직원이든, 조직 외부의 협력 집단이든 기본적인 신용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관계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용 자산은 항상, 그 스스로 손실을 무릅쓰는 일관성에서 가장 확실하게 쌓을 수 있습니다.
가령 평소 “실력/실적이 전부”라 말하던 팀장이 막상 조직원 평가 시점에 “이번엔 XX를 올려야”같은 말을 하면 그 이후 팀장의 지시를 얼마나 믿고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들이 몇 차례 발생한다면, 그 조직 안에서 실력/실적을 올리려 노력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지금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이번 한번 만”의 이번 한번 만이 몇 번씩 반복 된다면 그 조직은 어떻게 될까요?
내부 인원들이 리드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은 되십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리더쉽은 팔로워십에서 나옵니다. 이미 리드라는 자리 자체가 실질적으로는 사라져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 기술력: 최고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실무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 관리력: 일이 잘 굴러 가도록 운영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 정치력: 복잡한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3 가지를 꼽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것들이 사실 개인의 측면으로 보면 모두 트레이드-오프Trade-Off에 해당합니다. 관리, 정치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수록 실무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vise versa. 운영 관리를 잘 할 수록 정치적으로 그 성과를 과시/이용하기 어렵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어느 한 결정이 과연 좋은 선택이었는지 단적으로 평가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게다가 정치 역량이 뛰어날수록 실무 역량 평가에서는 손해를 보기 쉽습니다. (세간에는 이런 요건들이 평등하다 여기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사람 안에 담으려면 — 내향적인 동시에 외향적이고, 철두철미하게 계획적이면서도 진취적으로 도전해야 하며, 수비적인 동시에 공격적이어야 하고, 가치 지향적이며 또한 관계 지향적이고, 냉철하면서도 감성적이어야 합니다. 언젠가 적지 않았습니까?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500원) 같은 소리라고. 물론 실질적인 리더쉽에서는 사람 숫자 만큼이나 다양한 유형이 있겠습니다마는, 각각의 역할과 지위에는 적절한 위임과 분담이 필요합니다. 이 또한 또 한 가지 리더쉽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카리스마/판단력/결정력/인간성… 글쎄요. 세간에서 쉽게 이야기하는 그런 특성들은 리더쉽의 도구일 수는 있어도 방법은 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런 도구들이 없더라도 리드로서 기능/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스스로 서 있던 자리에서 보이는 시각만으로 좋은 리드를 논한다면, 그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보이는 새로운 관점이 그 판단을 바꾸어 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한 가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시각이 왜 문제인지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누구에게,어떻게, 좋은 리드여야 합니까?”
이 지점에서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좋은 리드여야 합니까?
그러게요? 좀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다른 이야기로 풀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