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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리드 오답노트

수포 시대의 인문학 밈 유감

“네들이 하는건 산수고”
— ‘04년 학부 기하학 수업 중

근 20년이 지났지만 기하학과 대수학, 해석학 수업에서의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수학자 힐베르트Hilbert는 점/선/면을 맥주잔/의자/테이블로 바꿔도 같은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지요. 나중에 찾아 보니 그 시대 수학계에서 떠도는 격언이었다고 합니다만 여차간에.

기하학/대수학/해석학 교과서는 우리가 쉽게 의심하지 않던 점/선/면의 정의, 연결성과 길이의 정의, 사칙연산의 정의 등등 수학 논리의 가장 밑바탕이라 할 수 있는 개념 정의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 공리를 바탕으로 길이를 통해 수량Quantity 개념을 정의한 후에 1+1이 왜 2 인가를 논합니다.

(도중에 번아웃으로 휴학해서 이해도가 높지는 않습니다만) 이런 수학의 역사적인 정리Theorem를 따라 가다보면, 수학이란 학문이 왜/어떻게 수천년간 쌓아 온 인류 연역논리의 총체인지, 그리고 왜 학생들이 ‘공부했다’고 여기던 그 많은 수학공식들이 사실 수학Mathematics이 아니라 산수Arithmatic였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세간에서 공박당해 온 과학적 방법론Scientific Methodology이 어째서 21세기를 지배하는 진리 탐구 방식이 되었는지 또한.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면, 연구Research가 부족한 겁니다”

현대 과학은 좀처럼 쉽게 단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각형이다”와 같은 선언은 과학의 방식이 아닙니다. 공간이 휘어 있다거나, 보이지도 않는 한 극한 지점에서 선이 끊어져 있거나, 우리의 인지가 왜곡될 수도 있는 등 —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 많은 대안을 전개했을 때 살아 남은 마지막 이론을, 원리Principal도 아닌 이론Theorem이라고 받아 들입니다. “이것은 현재까지 관측 결과에서 사각형일 가능성이 99.999% 이상인 볼록 도형으로 원, 삼각형, 육각형, 십이면체 및 이십면체가 될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하는 식입니다. 완전히 반론의 여지가 없는 논리로 증명되지 않았다면 (진리가 아니라) 가능성 높은 해설로 받아 들이는 진리 탐구 방법이, 곧 과학이고 과학의 방법론입니다.

때문에 흔히 알려져 있는 삼단 논법, p) 모든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q)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r)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반드시 죽는다. 을 과학적 방법론에서는 이렇게 봅니다:

p) 및 q)가 사실Fact이라고 가정Assume할 때, r)은 참True이다.

여기서 p & q가 사실이다, 라 하지 않고 전제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과학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모든 인간을 추적 조사하여 100.0% 다 죽었다라는 사실 근거를 확보하더라도 p) “모든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가 사실 원리라 선언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희박한 확률이어서 우리 우주에 현실 사례는 없었더라도 죽지 않는 인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누가 알겠습니까?

바로 이런 지점에 현대 수학/과학에 대한 공박이 발생합니다. 현대 과학의 설명 p’) 지금까지 인간은 거의 다 죽었더라에 대해, ~r’) p’은 p를 입증하지 못하므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글쎄요.

 

그러나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이런 이론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해서 논리를 세우는 과정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대학 전공자의 학부 수업에서도 근 한 달을 여러 관점으로 꼬박 반복 설명하는 극한 이론Limit theorem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일일이 이해시키겠습니까. 일 년 내내 극한만 붙들고 있을 것도 아닌데. 그러니 도함수 dx/dy를 계산하려면 n차 항에서 n을 계수로 빼고 차수를 n-1로 하고… 와 같은 풀이 공식을 주입하게 됩니다.

미적분 문제의 의미는 몰라도 미적분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마치, 매출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매출=Revenue라고 외운 아이처럼. 그런 관점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왜 외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반발합니다. 어른들은 마음이 너무 급합니다. 그 의미를 잘 모르는 어른들도 많구요. 차라리 솔직하게 “나도 모르겠네?”라 했다면 차라리 낫겠지만, 우리는 대개 “버릇 없이 말대꾸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며 얻어맞고 시작한 세대입니다. 그게 우리와 우리 이전 세대의 한계입니다.

그런 우리와 우리 이전 세대는 주입식 (개인적으로 학원식, 이라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교육과 학벌 추구에 맞물려 수학포기자(이하 수포자)를 세대 규모로 양산하면서, 그에 대한 반향인 것처럼 인문학을 기치로 삼았습니다.

내 관점에서는 인문학계에서 모욕으로 느껴야 할 이야기 아닌가 싶습니다만.

 

“인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세간에인문학이라는 밈Meme은 마치 합리성Rationale의 반대편에서 인본적인 감성Humane Sympathy을 의미하듯 퍼져 있습니다. 마치 이성과 합리성은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인문학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제) 연구는 과학적 방법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고, 애초에 합리성 없이 학문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합니다.

어쩌다 나 같은 공돌이 엔지니어조차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 인문학은 합리성을 배재해도 괜찮은 학문입니까? 어려운 수학을 피하기 위해 문과를 지망하고, 복잡한 논리를 피하기 위해 합리성은 빼고, 문과라서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에 해당하는 기술은 몰라도 되고?

당면한 산수는 공식과 문제 풀이를 외워서 넘어가고 (잊고) 수학은 사는데 별 지장 없으니 괜찮…은가요?

산수Arithmatic를 포기 하는건 개인의 삶에서 안타까운 문제에 그치겠지만, 수학 — 논리와 합리성을 포기 하는건 사회적 재앙이 된다 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문해력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불과합니다. 그 문해력 이슈조차 특정 단어를 알고 있는지 여부로 회자되는 것조차 씁쓸한 아날로지 같습니다.

끝없이 인력과 돈과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서 코딩 교육, AI 교육에 영어, 중국어, 논술 웅변을 교육하면 무엇 합니까, 알맹이가 없는데. 유창하게 쓸 수 있는 언어가 백만가지 있으면 무엇 합니까, 할 말이 없는데. 아무리 많은 지식을 암기로 쏟아 부으면 무엇 합니까. 이해가 없는데.

AI 분야에 유명한 이야기로 “중국어의 방 Chinese Chamber” 사고 실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밀실에 들어갑니다. 밀실 안에는 주어진 카드 입력에 따라 내밀어야 하는 답 카드 공식이 있습니다. 누군가 밀실에 카드를 내밀었을 때, 안에 있는 사람은 밀실에 적힌 매뉴얼에 따라 적절한 답을 제시합니다. 이 사람, 혹은 밀실 시스템이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공식을 머릿속에 빼곡하게 외우면 우리의 주입식/학원식 교육이 되고, 그 규모를 인터넷으로 확장하면 오늘날 AI 모델이 됩니다. 세상의 석학들은 후자의 사실을 두고 AI가 인간 지능 — 수학Mathematics — 에 비할 바가 아니라 호언장담합니다. 그러나 나는 역으로 그 전자의 현상에서 오싹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코 앞의 문제 풀이에만 몰두해서 산수Arithmatic의 훈련에 빠져 있는 한 인간은 그저 가성비 좋은 보급형 AI 모델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이직을 앞두고 있는 전 팀원 친구(데이터분석가)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은 드러난 숫자를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설명, 스토리를 제공하는 일을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주어진 숫자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수집 되었는지 그 맥락 위에서 의미를 풀 수 있어야만 해요. 앞으로 AI가 어떻게 발전하든, 그 의미를 해석해서 가망 높은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면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AI에 밀려 도태되겠지요.”

인문학은 / 시스템은 / 코드는 / 데이터는 수학입니까? 산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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